[OSEN=김재동 객원기자] “예(禮)는 정(情)에서 나온다고 했어.” 능군리 선비 경근직(조승연 분)이 한 말이다.

17일 방영된 MBC금토드라마 ‘연인’의 이장현(남궁민 분)은 속환 포로들의 정착처를 찾아 헤맨다. 하지만 조정의 눈 밖에 난 포로들이다. 세자빈 강씨의 역모론 속에 등장하는 존재들이다. 어느 마을인들 그 불화덩어리를 수용할까? 그때 장현은 문득 능군리를 떠올린다.

드라마 2회에서 이장현은 송추할배(정한용 분)와 이랑할멈(남기애 분)의 회혼례를 서원에서 치르고자 청한 바 있다. 평민의 회혼례를 서원에서 치른다? 다른 동리였으면 말도 안되는 발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경근직을 포함한 능군리의 양반들은 이를 흔쾌히 허락했다. 그 허락의 말을 음미하며 이장현은 “이 마을에서 참으로 죽향이 나는 것 같다”고 미소 지었었다. 선비를 흔히 대나무에 비유하니 참선비 사는 마을 쯤의 의미겠다.

그렇게 떠올린 능군리. 장현은 길채(안은진 분)와 함께 속환포로들을 능군리에 정착시킬 작정을 한다.

능군리는 이 드라마가 제시하는 유교적 유토피아다. 경근직이 말한 예는 유교가 추구하는 인·의·예·지·신 오상 중 하나다. 공자는 “예를 배우지 않으면 사람으로 갈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사람이 불인((人而不仁)하면 예가 무엇이 될 것인가(如禮何)”라고도 했다.

공자가 말한 인(仁)은 측은지심으로 인간 특유의 도덕적 감수성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은 정(情)과 일맥상통하고 “예(禮)는 정(情)에서 나온다”는 경근직의 말은 올바른 유교적 해석이 되는 것이다.

그런 교조화되지 않은 오피니언 리더들이 이끄는 동리라서 능군리는 정(情)이 살아있는 마을일 수 있었다. 동리를 대표하는 유생의 딸 길채도 자유분방한 소녀로 성장할 수 있었고 시니컬한 이장현조차 “보란 듯이 이 마을에 뿌리를 내리겠다.”고 호언할 수 있었다.

그런 마을에서조차 불인(不仁)한 선비가 탄생했다. 남연준(이학주 분)이 그 장본인이다.

청의 칙사를 역관 이장현이 끌어들였다는 말을 듣고 남연준은 분개한다. 이장현으로서도 사정이 있었을 것이란 경은애(이다인 분)의 말에 “이장현은 여인만도 못하다”며 “힘없는 여인들도 오랑캐와 스치기만 해도 자결하여 떳떳함을 지켰거늘..”이라고 뒷 말을 붙여 경은애의 가슴을 헤집는다.

경은애가 다시 “서방님은 여인들이 오랑캐에 손목만 잡혀도 자결해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라 물었을 때는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지켜진 조선이란 말입니다. 본시 검은 것 한 방울이 맑은 물을 더럽히는 것입니다.”고 덧붙인다.

참 정성스런 헛소리다. ‘그렇다는 게 아니라’면서 ‘그렇다’고 강변하는 말본새라니. 남연준의 헛소리를 계속 들어보자.

“하지만 손목이 잡혔을 뿐 아무 일도 없었을 수 있고..”(경은애)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손목을 잡힌 것이나 그보다 더한 욕을 당한 것이나 정절이 상한 것은 마찬가집니다.”(남연준) “허면 서방님은 길채가 다시 돌아온 것도 맑은 물이 더럽혀졌다, 그리 생각하십니까?”(경은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나 역시 유씨 부인이 살아 돌아와 기쁩니다. 씩씩하게 살아주어 고맙지요. 허나 구종사관의 선택도 이해합니다.”(남연준) “하지만 백성들이 오랑캐에게 고초를 당한 것을 늘 안타깝게 여기지 않으셨습니까?”(경은애) “백성들이 가엾다고 해서 여인들이 절개를 잊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이럴 때일수록 더욱 신하는 충성하고 여인들은 절개를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이 혼란한 나라에 기강이 세워지고 백성들이 평안해 질 수 있습니다. 구 종사관은 나랏일을 하는 사람이고 천하를 다스리자면 집안의 기강을 다스리는 일부터 시작해야죠. 그걸 알기에 진정 지조있는 조선 여인들은 손목만 잡혔다 해도..”

이 꼼꼼한 무논리의 견강부회는 결국 서방 입을 통해 ‘지조없는 여인’으로 전락한 경은애를 휘청이게 만든다.

남연준의 교언(巧言)은 이장현을 만나서도 계속된다. “아시는가? 어떤 사람들은 밥이 아니라 보람으로 산다네. 그런 사람들 덕분에 이 세상이 짐승의 소굴이 되지 않는 게야. 충심과 절개를 지키며 죽는 사람들 덕분에 아무리 힘센 자라도 제 뜻대로 세상을 가질 수 없음이 증명되는 게야.”

그럴듯한 말이다. 하지만 공자는 논어 옹야편에서 재아가 “어진 사람은 누가 우물에 빠지면 뒤따라 들어갑니까?”라고 물었을 때 “우물까진 가겠지만 뒤따라 들어가진 않을 것이다.”며 사리를 안다(知)면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혜가 없는 필부지용을 경계한 것이다.

남연준의 이 말을 들은 이장현의 얼굴에 설핏 미소가 스친다. “아무튼 이 나라 조선을 사랑하는 자네의 마음은 애처로울만큼 진짜라니까!”

‘가소롭게’란 수식은 빠졌지만 ‘애처롭다’는 표현은 참 적절해 보인다. 가엾고 불쌍하여 마음이 슬프다는 이 말만큼 남연준의 현실에 적절한 단어가 또 있을까?

오래 전 길채가 연정을 고백했을 때 남연준은 말했었다. “연모하는 감정은 찰나에 지나는 감정에 불과하오.” 남연준에게 있어 ‘찰나에 지나는 감정’을 이장현은 평생을 기약하고 지켜낸다. 뒤늦게 정신 차린 길채도 평생을 기약했고 본인 왈 “은애낭자에겐 저뿐입니다.”고 장담했던 지어미 은애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남연준은 그 은애가 도망길에 오랑캐를 만났고 어깨를 잡혔다는 고백만으로도 은애를 뿌리친다. 아마 남연준에게 ‘연모지정’은 찰나에 불과할 지라도 ‘질투’는 평생 계속될 감정일 것이니 그 졸렬함이 애처로울 밖에.

이런 남연준으로 인해 은애는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될 것 같아 걱정된다. 만약 그런 결과를 초래한다면 전적으로 불인(不仁)한 남연준이 자초한 불행이 될 것이다.

‘연인’은 마지막 한 회를 남겨두고 있다. 과연 유토피아 능군리에서 장현과 길채는 행복한 엔딩을 맞을 수 있을까? 정없고 불인(不仁)한 인조와 남연준 등이 시대의 주류로 있는 한 요원해 보인다. 유토피아란 ‘어느 곳에도 없는 장소’를 의미하기도 한다.

/zaitu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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